인생에서의 고난 생각


한번 크게 아파봐야 건강의 소중함을 알게된다.

같은 맥락으로 더 넓게 보면 우리 인생도 큰 고난을 겪어보면 비로소 일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진다.

여기서 애매한 부분은 '큰 고난'이다.

큰 고난에는 '1억이상 빚을 지면'과 같은 정해진 기준이 없다. 누군가는 몇백만원을 잃고 잠을 못이루기도 하고 누군가는

몇억을 잃고도 아무렇지 않게 생활한다.

사람마다 모두 다른것이다. 따라서 누군가가 어려움을 겪고있을때 자신의 잣대를 기준삼아 '뭘 그정도로...' 라는식으로

치부해 버린다면 이미 꼰대가 되어버렸다는 뜻이다.

어른은 아이에게서 배운다는 말이 있는데 나도 같이 생활하고 있는 세살박이 조카를 보며 새삼 느끼는점이다.

티라노 과자가 없어서 세상 서럽게 우는 모습을 보면 참 우습기도 하면서도 내 기준으로만 누군가의 고난을 판단 한다는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다시금 깨닫는다.


나는 지금 내 기준으로 인생에서 고난의 시기를 지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만약에 앞으로 더 큰 시련이 닥치면 지금 시기가 그리울수도 있을것이다. 

그리고 또 누군가의 눈에는 내가 배부른를 소리 하는것처럼 보일수도 있다는것을 잘 안다.

힘들어 봐야 인생을 안다고 했던가.

어쨌든 나한텐 힘든 시기인만큼 거기에 비례해 일상의 소중함이 더 크게 와닿는걸 느낀다.

잠잘곳과 먹을곳이 있으면서 크게 아픈곳이 없는 몸으로 일어나 하루를 살아가는것 자체가 감사할만한 일이다.

예전엔 이런 문구들이 전혀 와닿지 않았는데 ㅎㅎ 재미있다.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성공한 인물들이 대게 한번쯤은 큰 빚을 지거나 신체적인 어려움을 겪고 일어난 사람들이라는것이

역경을 이겨냈다라는 흐름을 거스르는듯한 타이틀이 무색하게 본질적으로는 자연의 법칙과 통하는 자연스러운 일처럼 생각된다. 

그 고난을 발판삼아 스스로의 두발로 딛고 뛰어 올랐을때 비로소 수면밖의 다른 세계를 볼 수 있는것이다.


그만큼 고난과 실패를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위험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마치 백신을 맞지 않은 신체와 같다고 볼 수 있다.

부디 나에겐 지금 이 시기가 백신이 되길 바랄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 마음에 달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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